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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Ceci n'est pas une pipe??

잘난척하려고 해석도 못하는 문장을 제목으로 쓴 것이 아니다. 이 글과 관련이 있다.

제목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뜻의 유명한 문장이다. 아래 그림을 학교다닐 때 한번쯤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것은 위키백과 링크로 대체하겠다.

https://ko.wikipedia.org/wiki/이미지의_배반


 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으로 분명 작가는 그림을 하나만 그렷을 것이다. 그러나 위 구글 이미지 검색의 결과로 알 수 있듯이. 색감이 서로 다른 '버전'들이 엄청 많다. 즉 이 '이미지의 배반'은 '이미지의 배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들이 저중에 최소한 반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그림 뿐만 아니라 모든 미술 작품에 적용되는 문제다. 이러한 인식에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제목조차 영어나 한국어로 일부러 번역으로 안 쓴 것도 그 이유에서다.

먼저 왜 다양한 버전이 존재할까?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이 자기 기분에 따라 편집

2. 미술관에 있는 것을 사진 찍는 과정에서 색 변조


다음으로 이것은 옳을까? 옳고 그름을 따질 사안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원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일단은 소장 미술관 웹사이트를 찾아보려 했지만 어려웠다(다른 작품). 그래서 '위키백과'에 있는 그림을 원작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나 원작이라는 근거는 없다. 원작이 뭔지 모르게 되면 우리는 말그대로 작가가 그린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박이 가능하다면 미술품의 위작 문제도 모두 하찮은 문제라고 해야할 것이다.

 둘째로, 내가 작가라면 이렇게 색감이 변조된 그림이 떠도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그림 등을 업로드 할 때 원본을 가져다 쓰셨으면 좋겠다.



추가 1. 그림 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발생하는 문제다. 패러디는 논외로하고 다른 사람의 시를 일부만 잘라서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황금찬 시인의 '문'이라는 작품이다.

    門
  
    기울어지는 시각
    싸늘한 거리에 비가 내린다
 
    운명처럼 마련된 내 생존의 길 앞에
    모든 문들은 잠기어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이 절박한 지대에서
    나는 몸부림을 치며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고
    가슴에 박히는 수없는 상처
    이것은 너무 심한 장난 같다
 
    사람은 평생을 두고
    열리지 않는 문앞에서
    문을 두드리다 가는 것인가 보다
 
    흘린 피는 '갈꽃'으로 피고
    핀 갈꽃바람에 울다 그나마 지고나면
    조용히 남는 보랏빛 허공
    천대(千代)를 두고 다시 만년을
    이 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울다간 사람들 -
    나도 여기 서서 울고 있다


바로 위에서 원본으로 올리기를 당부했지만 결국 나조차 이 시가 원본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연 구분이나 시어의 한자표기(허공, 천대, 상처, 문....)나 문장부호에까지 집착하면 사람에 따라 내가 원본강박증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원래 하려던 말은 이거다. 제 5연까지만 올리는 사람이 꽤 많다. 아마도 해석하기에 5연까지가 읽기 쉽고 5연도 마지막 연으로 나쁘지 않다는 본인들의 판단 때문이거나 다른 사람이 올린걸 그대로 퍼와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사람들 때문에 내가 수년간 이 시가 5연에서 끝인줄 알았다. 나는 피해를 봤다. 작가도 피해를 봤다.

그나저나 이 시는 정말 좋다 ㅎㅎ


추가2.

아무리 원본으로 올린다 한들 모니터를 거치면서 색의 왜곡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정말 작정한 변조가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런 글을 써보는 것이다.



언젠가 리뷰쪽도 글을 쓸 날이..